군주론을 만나다
요즘 들어 책 빌릴 곳이 없어졌다. 코로나 19 여파로 주변 도서관들이 임시 폐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.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읽자니 나와 안 맞는 책을 살까 겁이 나 관두었다. 지갑 사정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가심비 있는 소비를 하는 중인데, 책을 산 이후에 마음에 와 닿았던 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. 그래서 집에 있는 책을 회독하기로 마음먹고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.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,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'군주론' 이 눈에 띄었다. 작년 학교 서점에서 3권에 10,000원에 파는 할인 이벤트를 했는데, 데일리 카네기 '인간 관계론', 이상의 시집과 함께 구입했다. 군주론을 다시 보니, 처음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이 되살아났다. 책의 뒤표지에 있는 문구는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.
"인간은 사랑하는 자를 해칠 때보다 두려워하는 자를 해칠 때 더 주저한다. 인간은 이해타산적이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사랑하는 자도 버리기 때문이다.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유지되므로 효과가 있다."
책의 일부를 인용하여 뒷 표지에 실은 문구이다. 여느 책들과는 다른 과감한 표현방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. 저자는 '니콜로 마키아벨리'로,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사상가이자 정치 철학가이다. 그리고 이 책은 왕에게 선물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. 다른 신하들은 군주에게 옷과 비단같이 물질적인 것을 선물했지만,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가진 것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정치에 대한 지식밖에 없었다. 그래서 한 권의 책자에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나갈지, 군주가 가져야 할 자세와 덕목은 무엇인지 등을 정리하여 정치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. 사실상 군주를 위한 자기개발서이다. 이 책이 쓰인 당시에는 예와 덕을 중시하던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. 하지만 군주론은 이 사상에 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. 잔혹한 내용까지 담고 있는 이 책은 당시 '악마의 책'이라는 평을 받았고, 금지 도서로 지정된 이유도 사상과는 꽤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.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,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'군주론' 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.
"당신이 해를 입힌 적이 있는 자들을 신뢰하지 말라."
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 체사레의 사례를 들며 본인이 피해를 준 사람이나 자신을 두려워할 만한 사람에게 지위를 맡기지 말라고 당부하였다. 왜냐하면 인간은 두려움이나 증오로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 때문이다. 실제로 사람은 누군가에게 한 번 안 좋은 관념을 갖게 되면, 그 관념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. 어느 날 그 관념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더라도, 감정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라도 하면 다시 그 타인을 관념 속에 가두는 게 사람이다. 누군가에게 배려를 베풀어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면, 과연 정말 용서를 받은 게 맞는지 생각해보며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겠다.
"가해행위는 모두 한꺼번에 단숨에 시행되어야 한다. 그래야 신민들의 반감과 분노를 적게 만들 수 있다. 반면에 은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. 그래야 신민들의 감사와 충성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."
"일반적으로 인간은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럽기 때문에 군주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한 그들은 모두 군주의 편이다."
위 문장들은 군주론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다.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지만, 인간의 얄팍한 본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방법론을 제시한다. 매몰차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행위인데, 한꺼번에 몰살해야 반감과 분노를 적게 받을 수 있다고 한다. 사람들에게 반감과 분노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행동해야 적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위선적이고 계산적이어서 놀라울 정도이다.
지금까지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았던 문장을 일부 적어보았다. 공격적인 표현, 인의예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을 담고 있지만,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을 잘 담아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을까. 유럽 역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서 여전히 읽기 꽤 어려울 수 있다. 하지만 책을 읽고 나면 저술 당시 왜 '악마의 책'이라고 불렸는지,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사랑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.
'리뷰[REVIEW] > 책[Book]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독서록, 죽음에 관한 추천 도서 (0) | 2020.03.22 |
---|---|
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독서록, 자기 계발 서적 추천 (0) | 2020.03.15 |
정리하는 뇌 독서록, 자기 계발 서적 추천 (0) | 2020.03.01 |
클루지 독서록, 인간의 생각에는 함정이 있다 (2) | 2020.02.22 |
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 독서록 (0) | 2020.02.18 |
댓글